[한글은 문화 경쟁력]
한글 무시, 사대주의가
스스로 문화 경쟁력을 깎아내린다

‘리틀아이비, 새라키즈, 키즈카페’라는 식의 간판이나 푯말이 걸린 곳에서 영어를 배우고 놀던 아이들이 대학을 가서 이른바 ‘과잠(학과 단체복)’을 입는다. 등에 자랑스럽게 대학명과 학과이름은 당연히 그들에겐 익숙한 영문으로 새겨져 있다.

아파트 이름치고 제대로 된 한글이 붙여진 것 찾아보기 힘들다. 영어는 물론, 일반인들은 의미조차 알기 어려운 프랑스어, 스페인어까지 사용한다. 옛날 아파트 이름도 입주민들은 기를 써서 외국어 이름으로 바꾸려 한다.

아이들이 먹는 과자이름부터 자동차 이름, 공산품에 이르기까지 국적 불명의 언어로 고급품임을 내세운다. 예술,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작품명, 전시회명, 영화제목, 그리고 ‘챔피언십’이란 말까지 사용하며 한글은 무시된다.

영어나 외국어를 잘해야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그런 외국어가 적힌 물건이나 소지품 하나쯤 들고서 꼭 남들과 구별되어야 살아남는 것이 우리 사회의 서글픈 현실이다. 한글을 쓰면 싸구려 저가품이 되고, 알 듯 모를 듯 외국어를 적어 넣어야 ‘고급 브랜드’로 만들 수 있다는 얄팍한 상술이 녹아있다.

이것이 사대주의 문화다. 사대주의란 주체성 없이 강대국의 우월함에 기대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을 말한다. 적어도 한글에 있어서, 문화에 있어서 너나없이 우리 사회는 사대주의 늪에 빠져있다.

세계에서 한류가 유행한다 해도 일상에서 한글에 대한 인식이나 대접은 부끄러운 수준이다. 우리 문화자산, 문화경쟁력을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는 ‘국어정책과’가 있다. 또 ‘국립국어원’도 있다. 국어시험에나 나올 법한 맞춤범과 띄어쓰기를 연구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식민지 시절 일본은 ‘국어말살정책’을 펼쳤다. 민족의 정신과 얼을 없애려 했던 만행이었다. 그런 만행을 우리 스스로 저지르고 있음을 반성한다. 우리말이 유린당하는 문제다. 인권유린만큼이나 무겁게 생각할 문제다.

2018. 10. 9.
바른미래당 원내대변인 김수민

저작권자 © 구리남양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