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과 민주주의’를 강연하는 하승수씨와 구리남양주 시민(사진=우영선 객원기자)
‘헌법과 민주주의’를 강연하는 하승수씨와 구리남양주 시민(사진=우영선 객원기자)

지난 4월 25일에 한살림 구리지구 모임방인 모락모락에서는 ‘헌법과 민주주의’라는 하승수씨의 강연이 있었다. 이 강연을 추진한 주체는 구리남양주 느티나무의료사협의 교육위원회며, 한살림구리지구는 행사를 홍보하고 장소를 제공했다. 홍보의 적극성이 좀 부족했으며,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에는 공간도 협소한 편이었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생활과 의료와 관련된 단체가 역할을 서로 분담하여 의미 있는 활동을 이끌어낸 점에는 박수를 보낼만하다.

한살림생협은 조합원들이 마을모임과 소모임을 진행해나가고 각종 행사를 치룰 수 있도록 각 지구별로 모임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북동지부에 속한 구리지구의 경우, 4개 월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해 12월 28일에 모임방(모락모락)의 문을 열었다. 2년여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4년 9월 20일에 설립된 느티나무의료사협은 ‘더불어 사는 지역공동체’와 ‘가장 인간적인 의료 실천’을 지향하며 의료행위와 지역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과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로 활동 중인 하승수씨는 지난 FTA 저지 운동 당시 녹색평론과 여러 강연회를 통해 관련 국제법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천주교 환경사목 신부들과 협력하여 두물머리 투쟁에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녹색당 활동을 통해 환경의 차원에서 밀양송전탑 문제와 제주 해군기지 사태를 비판적으로 진단했다. 이제 그는 개헌 논의를 널리 확산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승수씨가 강연을 한 4월 25일은 예사로운 날은 아니었다. 지난 4월 27일 문대통령은 역사적인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의 주역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4월 23일까지 국민투표법이 개정되지 못하게 되자, 문대통령은 6월 개헌이 무산되었음을 24일에 공식 발표해야 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미투운동의 여파나 댓글조작 의혹으로 국회나 정부의 권력자들이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리며 씨름판을 벌이던 시기도 이때다.

기본권과 민주주의 시스템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로부터 3월 13일에 개헌자문안을 받은 대통령은 3월 26일에 개헌안을 발의했다. “대통령이 발의하는 것은 좋은 모양새가 아니지만, 의원들은 당내 의견조차 수렴하지 못했다”라고 언급하며 하승수씨는 대통령 발의의 타당성을 호소했다. 국회는 본회의도 한 번 못 열어 보고 국민투표법 개정을 무산시켰고, 국민들은 개헌에 대한 인식과 지식이 부족한 현 상태에서 6.13 개헌보다는 2019년 개헌을 기대해야 된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1919년 4월 11일에 대한민국임시헌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에 100주년이 되는 이 2019 개헌은 더 의미가 깊다고 한다. 만 18세부터 선거권이 주어진 1944년의 대한민국헌법, 대통령 직선제라는 성과를 냈지만 진정한 국민의 개헌은 아니었던 1987년 개헌 이후, 누적되어온 개헌 요구를 정치가들 대신에 국민이 주도해야 된다고 주장하며 그는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 사례의 개헌 국민발의의 사례를 들었다.

각 정당들은 국민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개헌을 추진한다면서도, 그는 ‘노동3권’과 ‘토지공개념’을 사회주의로 인식한 특정 야당인사들의 사진을 비난조로 제시하며 강연을 전개해나갔다. ‘토지공개념’은 토지국유화가 아니라 토지 소유를 제한하는 친자본주의 조항이라고 하승수씨는 주장했지만, 충분한 이해를 돕는 구체적인 내용 전달은 없었다. 그가 주력하여 언급한 내용은 ‘비례대표제’에 대한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개헌의 내용은 크게 기본권과 민주주의 시스템으로 이루어지며, 이 시스템의 근간인 올바른 선거제도는 ‘비례대표제’다. 기본권의 주체는 국민 대신에 사람으로 바뀌고, 생명권, 안정권, 정보기본권 등의 기본권 조항이 강화된다. 차별금지의 사유가 더 포괄적으로 바뀌고, 농민과 소비자의 권리가 확대된다. 1948년 제헌헌법에는 사기업의 노동자가 이익을 배당받는 권리가 명시되어 있으며, 이탈리아 헌법도 그 한 사례라고 한다.

민주주의와 관련된 헌법 조항에서 현재 미비한 세 가지는 ‘민의를 반영하는 선거제도’, ‘보완 장치인 직접민주주의’, ‘지방분권과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한다. 하승수씨는 비례대표제, 지방분권, 직접민주주의가 잘 되어 있다면 정부형태는 크게 상관없다고 주장했다. “정부형태는 권력을 어떻게 나누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협상해서 잘 만들면 된다”는 소박한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 사례로 7명의 내각 구성원이 1년씩 대통령을 역임하는 스위스의 사례를 들었다.

득표율과 의석의 불일치로 승자독식의 폐해가 난무하는 현재의 소선거구제(다수대표제) 대신에 정당득표율에 비례하여 국회의석이 배분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네덜란드와 독일의 사례를 들기도 했다. 네덜란드 하원 선거에서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채택되어,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선출 의원수가 결정된다. 하승수씨는 비례대표제와 소선거구 연동(병용)제가 채택되고 있는 독일의 모델이 한국에 적합하다고 평가했다.

누구를 위한 개헌인가?
하승수씨는 집 모양의 그림으로 민주주의 시스템과 관련된 개헌 내용을 요약해주었다. 직접민주주의와 지방분권은 두 기둥, 선거제도는 기초, 정부형태는 지붕에 비유되었다. 기둥과 기초가 튼튼하다면 지붕은 어떠해도 크게 상관없다고 주장하셨는데, 전공이 건축인 기자의 질문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토대가 단단하고 기둥이 굳건해야지만 집이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붕이 허술하면 거주환경은 최악으로 치닫고 결과적으로 기둥과 토대는 썩게 된다.

우리 국민은 튼튼한 집을 넘어, 안락하고 살만한 집을 원한다. 비례대표제 외에도 국민 안위에 중요한 개헌 조항을 다룬 강연들도 국민에게 제공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에서 만든 손바닥 헌법책이 더 널리 배포되어야 하고, 한국헌법학회의 학자 30명이 저술하여 지난 2월에 출간한 『헌법주석』도 쉽게 풀어서 국민들에게 전달되면 좋을 듯싶다. 이번 5월의 녹색평론 160호에서도 개헌 논의가 특집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하승수씨의 글을 포함한 이 특집에서는 토지공개념 및 녹색헌법과 관련된 글도 실려 있다. 정당의 이익을 위한 개헌이서는 안 되는 것처럼, 특정 이데올로기와 특정 집단의 감추어진 이익을 도모하는 개헌이어서도 안 된다. 분권, 토지, 성평등, 녹색, 노동, 다수결, 주체 등의 단어를 둘러싼 논의들은 치밀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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