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역 플랫폼의 KTX(左), 정동진역 플랫폼의 무궁화호(右)(사진=우영선 객원기자)
강릉역 플랫폼의 KTX(左), 정동진역 플랫폼의 무궁화호(右)(사진=우영선 객원기자)

경강선 KTX가 12월 22일 개통됐다. 3주 동안 시운전 중이던 열차들은 개통을 하루 앞둔 21일 저녁에 더 바쁘게 오갔다. 주말은 18회, 주중은 26회로 운영되는 경강선 KTX는 현재 서울역과 청량리역에서 출발한다. 올림픽 사전수송 기간인 1월 16일부터 패럴 올림픽이 끝나는 3월 22일까지는 인천공항에서도 출발하며 올림픽 기간 중에는 51회까지 증편된다. 서울역에서 강릉까지는 114분(운임 27600원), 청량리에서 강릉까지는 86분(26000원), 인천공항에서 강릉까지는 2시간 12분 정도(47000원) 소요될 예정이다. 경강선 KTX는 서울에서 서원주까지는 기존의 선로를, 원주부터 강릉까지는 신설된 복선 선로를 달린다.

경강선 KTX의 종착역인 강릉역은 시내에 위치했던 기존의 강릉역 자리에 새롭게 들어섰다. 강릉역사를 구 강릉역 자리에 세울 것인지, 강릉시 외곽의 남강릉 방면(구정면)에 둘 것인지에 대한 논의들이 분분했지만 동계올림픽 경기장과 가까운 구 강릉역 자리로 선정됐다. 강릉역을 새롭게 건설하는 동안 청량리나 대구 등에서 출발한 무궁화호는 정동진역까지만 운행됐다.(2014년 9월 16일부터) 강릉역사가 완공되고 KTX가 개통된 후에도 무궁화호 열차는 강릉역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정동진역에서 멈춘다. 동해, 삼척 행 열차로 환승하기 위해 승객들은 강릉역사 밖에 대기한 정동진행 유료 셔틀버스(2000원)를 이용해야 한다.

양평역에서 강릉역까지

최대 운행속도 300km에, 동력차 2량, 특실 1량, 일반실 7량으로 구성된 경강선 KTX는 일반석 1량이 유아동반석으로 편성되고 있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는 23일 금요일, 기자는 남양주시 와부읍을 출발해 강원도 동해시까지 가기 위해 양평역에서 2시 48분에 출발하는 경강선 KTX를 이용해보았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이 열차는 청량리역, 양평역, 둔내역, 평창역, 강릉역에 정차하게 된다. 낮 시간대에 출발하는 열차들은 상봉역과 양평역 중에 한 곳에만 정차한다. 와부읍 주민들은 남양주시를 포함한 인근의 구리시, 하남시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와부읍에도 KTX 정차역을 허가하라는 민원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원주 지역까지는 KTX와 무궁화호, 경의중앙선 전철이 같은 선로를 달리기 때문에 KTX 개통을 즈음해 경의중앙선 전철이 연착되는 경우가 더 잦아지자 시민들이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23일에도 양평역으로 이어지는 전철은 10분이나 연착했기 때문에 10여분 간격을 두고 환승되는 KTX를 타기 위해서는 급히 서둘러야만 했다. 혹시 모를 미탑승 사태에 대비해 지연확인서도 받아둬야했다. 게다가 2시 48분에 양평역에서 출발해야하는 KTX열차는 출발이 4분 지연된 상태로 양평역에 도착했다. 열차에 탑승해보니 연결 통로에도 입석 승객들이 들어서 있었으며, 운동 장비를 소지한 외국인 승객들도 있었다.

열차가 평창역에 도착하자 외국인들을 포함한 절반가량의 승객들이 하차했다. 700미터 깊이 까지 내려가는 대관령 터널과 강릉 시내 지하를 통과한 열차는 4분 연착된 상태로 1시간 11분 만에 강릉역에 도착했다. 환승 시간이 5분 간격인 정동진행 셔틀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뛰어야만 했다. 정동진발 청량리행 무궁화호 열차는 바다 열차 및 마주 오는 무궁화호를 먼저 보내기 위해 10분이나 연착했다. 강릉에서 정동진, 동해까지 노선이 이어졌다면, 양평역에서 묵호역까지 1시간 20분 정도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이유(강릉역 지하화, 동계올림픽, 주민 반대)로 끊어진 노선 때문에 총 2시간 20분이 소요됐다.

뜨거운 감자 강릉역

강릉역사 건물과 조형물(左), 강릉역사 내 코레일 공연(右)(사진=우영선 객원기자)
강릉역사 건물과 조형물(左), 강릉역사 내 코레일 공연(右)(사진=우영선 객원기자)

이 1시간의 ‘잃어버린 시간’은 불균형적 지역발전의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는’ 결과 중 하나다. 부산과 광주까지 KTX와 SRT가 달리며 하루생활권을 자랑하는 동안 자동차로 서울에서 2시간 거리인 강릉까지 기차로 간다면 5시간 30여분이 걸린다. 청량리발 강릉행(2014변부터 정동진행) 열차는 충청북도 제천(경상북도의 영주 포함), 강원도의 태백을 거치며 우회하는 노선이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다. 겨울철에는 대관령과 정동진에, 여름철에는 동해안 해수욕장으로 관광 인구가 대거 몰리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열차 노선은 오래 동안 신설되지 않았다. 시멘트 산업 단지의 물류 수송 열차도 굽이굽이 달여야만 했다.

혹자는 “대관령이 막혀있어서, 혹자는 강원도에 힘 좀 쓰는 정치인이 없어서”라는 증명할 수 없는 이유들을 농담 삼아 늘어놓기도 했다. ‘강원도는 대한민국의 허파 역할을 해야 하는 청정구역으로 남겨둬야 된다’는 편견이 개발당국의 편리한 핑계로 둔갑해왔고 예산 편성 주체들도 여기에 편승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어찌되었든 동계올림픽이라는 잔치의 큰 떡고물로 KTX가 신설되었는데, 대관령은 개발의 방해 요소가 아님이 증명됐다. 대관령 구간은 21.7km에 달하는 국내 최장 산악터널로 뚫렸다. 영동지역의 숙원이던 KTX는 들어섰지만 강릉 인근의 동해삼척 지역은 아직 그 개발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강릉시와 철도청은 신강릉역을 강릉시 외곽인 구정면 금광리 일대에 조성하는 기본협약서를 1998년 체결했다. 그러나 새로운 대안들이 제기되면서 2011년부터는 신강릉역 위치 선정 및 지하화 문제와 관련된 갈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조정 끝에 신강릉역은 지하 7미터 깊이의 플랫폼과 지상 1층의 역사 건물로 이루어지고 순수한 여객용 철도역으로 계획됐다. 이 과정에서 신강릉역으로 예정됐던 구정면 쪽은 남강릉 신호장으로 격하됐다. 남강릉 신호장의 위치는 미래의 철도 운행과 신설 공사비의 효율이 높은 곳으로 평가됐지만, 강릉시민들의 민원과 동계올림픽을 이유로 지하화 된 시내 방면의 신강릉역이 들어선 것이다.

정동진역과 강릉역 사이에는 안인역이 있다. 이 안인역과 남강릉 신호장 사이의 1.9km 철로를 신설해야만 2018년 말로 예정돼 있는 동해시로의 고속철 운행이 가능하게 된다. 물류와 승객을 아우르는 대규모의 남강릉역이 들어서리라는 기대로 들썩였던 인근 부동산 시장은 한 풀 꺾인 상태다. 관광 특구, 여객터미널 사업, 북평 산업 등지의 개발에 보태 예정된 고속철 운행의 호재로 이번에는 동해시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한국철도시설 공단과 지자체, 시민단체, 부동산시장, 힘 있는 지방 건설세력 등이 한 데 어울려 동계올림픽과 개발이라는 잔치를 벌이며 차려 놓은 음식들을 나눠 먹고 있는 형국이다.

이 들썩들썩한 분위기 속에 비밀스러운 자태를 드러낸 강릉역사 건물은 ‘거대하다’는 호평을 받고 있지만, 공간 및 규모면에서 과대 포장된 건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광장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역사 앞의 빈 터에는 ‘태양을 품은 강릉’이라는 주제를 담은 조형물이 서 있었고, 고속철이 개통된 지 3일이 지난 시점에도 공사자들이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역사 건물은 화합을 상징하는 듯한 원형을 띠고 있는데 합의 보다는 지역 이기주의가 힘을 얻었던 그동안의 계획 및 건설 과정에 비추어보면 쓴웃음을 자아내는 형상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일부 전광판들은 아직 작동되지도 않았다.

23일 오후 4시, 강릉역 대합실 한 가운데에서는 코레일 심포니의 연주회가 열리고 있었지만, 셔틀 버스를 타야하는 누군가는 단 1초도 음악을 듣지 못했다. 크리스마스이브를 하루 앞둔 늦은 오후, 정동진역 인근 해변에는 벌써부터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관광지로 개발된 정동진의 소요 속에서 나이든 무궁화호 열차는 플랫폼에서 하염없이 승객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7년에 기자는 강릉역에서 출발한 비둘기호를 타고 정동진역을 지나다녔다. 해안선에 바짝 붙어 달리던 열차는 잔잔한 바다와 인적 없는 기차역의 고요함 속으로 큰 기침하며 은근살짝 미끄러져 들어갔다.

이번 여정에서 기자는 서울에서 출발한 KTX를 탔지만 결국에는 서울로 떠나는 무궁화호를 다시 타야하는 어이없는 상황을 겪었다. 더군다나 잠시 휴식할 수 있는 카페 칸은 아예 사라지고 없었다. 승객 수가 줄어들면서 코레일은 객차 한 량을 카페 칸으로 운영해왔다. 매출 감소와 인건비 축소를 이유로 1년 전부터 코레일은 열차 내 카페 운영을 중지했고 유니폼을 입은 카페 운영 직원의 모습도 더 이상 볼 수 없다. 경강선 KTX에는 젊은 여성 승무원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올림픽 잔치가 끝난 후에도 이들을 만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연휴 마지막 날인 25일 양평역, KTX는 바삐 오가고 무궁화호는 20분이나 지나 도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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