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화분 ‘서울로 7017’을 다시 찾다

승인2017.09.19 09:19l수정2017.09.1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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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로부터 ‘서울로 2017’ 2017년 봄, 2017년 가을, 콘크리트 화분과 슈즈트리(사진=우영선 객원기자)

올봄에 개장한 서울로 7017은 뜨거운 계절을 지나 이제 가을을 맞고 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주말 저녁, 회현역에서 시작되는 뱀처럼 기다란 고가 보행로가 푸른빛을 발하자 많은 시민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거닐고 있었다. 어쩌다 보이는 외국인들, 지방에서 올라온 듯한 관광객들, 연인들, 가족들로 이루어진 인파가 둥근 화분들 사이사이를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둥근 전망대에 올라가 서울로 7017과 서울역 주변의 도시 풍경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거리 공연을 하는 댄서들과 기타리스트 주변에 잠시 머물기도 했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쓰다듬고 간 콘크리트 바닥과 화분들은 한여름 대낮의 뜨거운 기억들을 잊고 차분해졌다. 그러나 콘크리트 화분 안에 갇힌 수목들 중 일부는 도시의 오염된 공기와 열기로 인해 시들어가고 있었고, 콘크리트 바닥의 80군데에도 균열이 생겨 보수 작업을 거치기도 했다. 추운 겨울이 오면 매서운 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며, 눈비와 영하의 기온으로 콘크리트 바닥은 빙판이 될 수도 있다. 생명이 다한 고가차도는 지붕으로 덮이거나 나무 바닥으로 된 보행로가 아닌 왜 ‘콘크리트 화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왔을까?

콘크리트 화분의 탄생과정

‘세상에서 가장 긴 콘크리트 화분’이라는 오명을 얻은 ‘서울로 7017’의 명칭에는 재생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1970년 8월 15일에 개장한 서울역 고가차도는 안전 문제로 2006년에 차도로서의 기능을 잃게 된다. 기획 및 계획 단계의 심한 진통 끝에 서울역 고가차도는 지난 5월 20일 ‘서울로 7017’이라는 고가 보행로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개장 후 열흘 동안 8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았지만, 이용의 불편함과 몇몇 사건들이 대두되자 시민사회와 전문가 집단, 언론에서는 서울로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일기도 했다.

이러한 논쟁의 이면에는 정치적 요소가 똬리를 틀고 있다. 2014년 5월 박원순 시장은 선거 공약으로 ‘보행로’를 제시하고, 이듬해에 서울역 7017프로젝트를 발표한다. 두 달 후인 3월에는 ‘서울역 7017’ 시민위원회가 구성되었고, 국제지명 현상설계의 당선작이 5월 13일에 발표되었다. 서울시는 7곳의 건축 및 조경 회사를 지명했으며, 네덜란드의 비니 마스가 당선되고, 한국 건축가 조성룡과 조민석이 각각 2, 3 등을 차지했다. 고가차도 자체를 철거해야 된다는 반대 여론뿐만 아니라, 이러한 지명공모전 자체가 폐쇄적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월간저널 <환경과 조경>은 2015년 7월호에서 공모전의 면면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7팀의 제출 작품이 소개되고, 당선작에 대한 비평과 서울시의 이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비평도 실렸다. 전문가들은 이 고가 보행로 프로젝트를 근시안적이며 피상적인 기획으로 평가했다.

2등 작품인 <모두를 위한 길>을 설계한 조성룡은 ‘서울역 고가의 아스팔트를 덜어내고, 원래 구조를 재활용하여 네 가지 층이 생기는 다양한 길’을 계획했다. 지붕이 형성될 수 있는 이 길들은 강렬한 햇빛과 비바람, 눈 등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흐르는 랜드마크: 통합된 하이퍼 콜라주 도시>를 설계한 조민석은 ‘서쪽 끝에 구조체와 결합된 산을 구축하고 동쪽 끝에는 남대문과 한양 도성 주변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량을 덧붙이는’ 아이디어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기존 고차차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설계 지침에서는 벗어났다는 평이다.

마르틴 라인 카노는 고가 가장자리에 목재로 된 기다란 벤치를 두고 여름에는 물놀이,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두었다. ‘서울 신기루’에서 창융허는 여러 행위를 유도하는 유리로 된 14개의 중정을 구상했다. 후안 헤레로스의 <서울 늘 푸른 테라스>는 고가에서 수집된 우수를 아래쪽 연못으로 끌어들이고, 하중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고가 위가 아니라 지면 위에 나무를 심어 고가 위로 뻗어나가도록 계획했다. 그러나 도로들이 차지하고 있는 고가 아래에 나무를 식재할 공간이 충분하겠느냐는 이의가 제기되었다.

당선작인 <서울수목원>을 설계한 장본인은 네덜란드 건축사무소 MVRDV를 이끄는 비니 마스다. 로테르담의 공동주택과 마켓하우징 설계로 유명한 MVRDV는 국내에서는 안양공원의 전망대를 설계하기도 했다. 데이터로부터 설계의 영감을 이끌어내는 비니 마스는 서울시의 수목들이 가나다순으로 식재된 거대한 공중 수목원을 구상해, 교육의 장이 되도록 의도했다. 수목들의 다양성이 잘 드러나도록 바닥과 화분, 그리고 작은 매스들은 콘크리트 재료로 통일시켰다. 그는 시민의 참여를 통해 변화되어 가는 공중 보행로가 되길 기대했다.

실제로 완공된 서울로 7017은 설계자의 바람대로 “교육 목적의 식물원으로 성공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는 견해도 제기되었으며, 식물에 대한 학대라는 비난도 일었다. 서울로 7017에는 꽃과 나무 2만4,085 그루가 심어진 콘크리트 화분 645(66가지 형태)개가 놓여 있다. 다리의 폭은 10.3미터이며 총 길이는 1,024미터, 화분의 최대 지름은 4.8미터다. 전체 LED 조명은 555개에 달한다. 잠실의 롯데 타워의 높이도 555미터에 이른다. 어찌 보면 한강의 북쪽과 남쪽에 각각 수평방향과 수직방향으로 뻗은 기다란 빛의 형상이 새겨진 셈이다.

죽음과 고립을 넘어

▲ 좌로부터 서울로 7017과 슈즈트리, 호텔 마누와 연결로, 마켓홀과 광장(사진=우영선 객원기자)

LED의 푸른빛이 서울로의 트레이드마크로 각인된 반면, 서울로의 오점들은 애써 지워져 가고 있다. 한 미술 평론가로부터 ‘흉물이라기보다 괴물’이라는 혹평까지 받고, 세금낭비의 의혹과 예술 논쟁에 휩싸였던 슈즈트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 어느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버려진 신발 3만 켤레로 이루어진 슈즈트리는 서울역 광장에서 뻗어나가 서울로까지 이어졌다. 슈즈트리를 본 아이들은 ‘마녀의 문’같다고 놀라기까지 했다. 흉물 논란과 자금 스캔들과는 별개로 슈즈트리는 서울로 7017에 죽음의 기억과 기운들을 불러일으켰다.

‘버려진 신발’에서 자살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시민들은 더더욱 슈즈트리를 혐오했다. 뜨거운 논란 가운데 슈즈트리는 5월 29일 철거됐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날 밤 카자흐스탄 남성이 서울로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했다. 그는 다음날인 30일 오전에 사망했다. 이러한 사고는 기획 단계인 2014년 9월에 여러 전문가들이 이미 우려했던 위험 요소였다. 그러나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언론들은 죽음과 관련된 서울로의 위험성에 대해 일제히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울로의 화려한 탄생 뒤에 가려진 또 하나의 죽음은 여전히 외면되었다.

서울역 고가차도의 ‘새로운 탄생’이라는 밝은 이미지를 극대화하려는 의지에 동참이라도 하듯, 개장 당시 방문객들은 그 죽음을 기억하지 못했고 언론도 애써 침묵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2013년 12월 31일 저녁 5시 30분경의 일어난 사건이었다. 고 이남종씨는 ‘박근혜 사퇴’와 ‘특검 실시’라는 글귀가 써 있는 현수막을 난간 밑으로 내린 후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채 투신했다. 그는 새해가 밝은 다음날 오전에 결국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 수사당국은 이 죽음의 원인을 경제적 빈곤에 의한 비관으로 발표하고 언론도 이에 동조했다.

그 현수막의 글귀처럼 특검과 탄핵이 실시되고, 뜨거운 불길과 함께 몸을 던졌던 그 고가차도가 ‘멋진’ 보행로로 재탄생했지만, 그의 죽음은 거의 잊혀졌다. 열사라는 칭호를 붙이지 않더라도 그는 의인임에는 분명하다.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고자 했던 그의 존재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다리의 푸르고 오묘한 LED빛에 가려졌다. 다리는 분리된 곳을 연결하고 벌어진 틈을 이어주는 무엇이다. 서울로 7017은 17개의 보행길을 통해 주변의 6개 지역으로 뻗어나가며 도시의 여러 영역을 연결하도록 계획됐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서울로의 연결성은 상당히 약하며, 오히려 고립의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연결로들은 공적 영역이 아니라 호텔 마누와 같은 사적 건물로 직접 연결될 뿐이며, 서울역 광장과 서울로를 연결하는 나선계단은 소극적인 연결 수단에 그치고 만다. 그 겨울에 오래된 사무소 건물에서 비즈니스호텔로 재탄생한 호텔 마누의 창문들은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서로 분리된 채, 생명력 넘치는 공적 영역이 되지 못하고 있는 서울역 광장과 서울로 7017를 내려다보고 있다. 연결로는 호텔 자신이 거머쥔 채로.

서울역 광장과 서울로 7017을 연결하는 아찔한 나선 계단이나 슈즈트리가 아니라 두 공간을 연결하는 좀 더 적극적인 건축 요소가 있어야만 했다. 소위 ‘망작’으로 평가되는 서울로 7017과 달리 비니 마스가 로테르담에 설계한 마켓홀은 생명력 넘치는 공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공동주택들이 중앙의 거대한 시장을 둘러싸고 있는 배치다. 다양한 품목이 판매되는 시장은 시민과 세계 곳곳의 관광객들로 발길로 넘쳐난다. 이러한 성공의 핵심적 요소 중 하나는 내부 시장과 시장 밖의 두 광장이 적극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9월 초에 서울에서 시작된 국제건축연맹(UIA) 세계건축가대회에 참석한 비니 마스는 서울로는 아직 미완성 단계라고 지적했다. 추가적인 통로 및 서울역과 서울로의 적극적인 연결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음을 밝혔다. 서울로 7017이 흉물로 전락하기 보다는, ‘험한 세상의 다리’와 같은 생명력 있는 공적 공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영선 객원기자
wahrheit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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