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 모터스: 금빛 기술문명과 존재들

승인2017.04.25 22:28l수정2017.04.25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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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홀리 모터스' 포스터 부분 캡처

지난 4월 18일 아트나인에서는 레오 카락스 감독의 2012년 작품인 <홀리 모터스>가 특별 상영됐다. 예매 가능한 90석 이하의 자리는 일찌감치 매진됐다. 4월 20일 저녁에는 남양주시 와부 지역의 산들바람 작은도서관에서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러한 토론 모임은 경기도의 따복공동체 ‘주민제안공모사업’의 후원 하에 진행되는 일종의 인문학 동아리다.

지난달 16일 경기도 따복공동체는 ‘주민참여도, 실현가능성, 효과성, 지속가능성 및 자립성 등’의 심사 기준에 따라 ‘공간조성’ 부문에 80곳, ‘공간활동’ 부문에 144곳, ‘공동체활동’ 부문에 303곳의 지역모임을 선정해 ‘주민제안공모사업’의 결과를 공고했다. 구리남양주시에서는 ‘별언덕’ 외 2곳의 모임이 공간조성 사업에 당선됐고, 공간활동 사업에는 ‘산들바람작은도서관’과 ‘호평야학’, ‘똥강아지 육아생명 모임’ 외 7곳이 당선됐다.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공간 조성 시설비를 지원하는 ‘공간조성’에는 2천만원, 기존에 확보되어 있는 주민공동체 공간을 활용하는 ‘공간활동’에는 천만원, 주민모임의 ‘공동체활동’에는 5백만원이 보조금으로 책정됐다. 선정된 각 지역모임은 모임 특성에 맞는 활동 프로그램을 가동하게 되며, 도민과 시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이 보조금은 이러한 활동의 윤활유 역할을 하게 된다. 본지는 여러 공동체의 활동을 공유하고 알릴 계획이다.

레오 카락스 감독은 20대와 30대 초반에 <소년 소녀를 만나다>, <나쁜피>, <퐁네프의 연인들>을 만들어 마니아층을 이끌어내며 천재적인 감독으로 평가받아 왔다. <홀리 모터스>의 주인공 오스카는 하루 동안 홀리 모터를 타고 파리 시를 누비며 9가지 배역을 소화해낸다. 오스카는 금융자본가가 되어 그의 ‘집’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 이후로는 거리의 걸인 노파, 모션 테스팅 실험자, 묘지의 엽기적인 광인, 자신감을 잃은 소녀의 아버지, 악단의 리더, 복수하는 살인자, 임종하는 노인, 고릴라 가족의 가장 역할을 해내며 하루를 보낸다.

오스카는 한 ‘스케줄’마다 진짜 같은 삶을 산다. 그리고 그 역할이 끝나면 달리는 홀리 모터 안에서 분장을 지우고 새로운 역할을 위해 몸을 다시 꾸민다. 9가지 삶을 사는 동안, 오스카는 하나의 삶에서 죽지만 곧이어 다른 삶에서 다시 태어난다. 오스카의 삶들은 선과 악, 기괴함과 아름다움, 거대권력과 인간의 일상적 이야기를 드러낸다. 오스카를 태우고 홀리 모터를 운전하는 이는 셀린이다. 그녀는 오스카에게 하루 일당과 그날 묵을 고릴라 ‘집’의 열쇠를 건네준 후, 자동차를 홀리 모터스사의 차고에 주차한 뒤 가면을 쓴 채 귀가한다.

자정이 넘은 시각, 많은 홀리 모토들은 차고에 모여 잠들기 전의 대화를 나눈다. 폐차장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모두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아멘 아멘’을 웅얼거리며 잠든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홀리 모터들은 리무진 유형의 자동차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자동차는 19세기 기술의 위대한 산물이다. 홀리 모터들은 인간들이 엔진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물론 기우는 아니다. 미래의 돈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기업들은 벌써 새로운 유형의 이동 수단과 스마트한 도시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스마트한 시대에 영화도 폐물 신세가 될지 모른다. 이 작품은 영화의 속성과 운명을 영화적 서사로 풀어내고 있다. 또한 이 영화는 자기 정체성이라는 감옥에 갇힌 채, 인간 실존의 복합성을 감추려는 현대인의 초상을 드러낸 작품으로 이해되며, 역으로 진실을 감춘 채 상황에 맞는 가면을 쓰고 살아야 되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린 작품으로도 평가된다. 또한 홀리 모터스로 대표되는 ‘생각하는 기계’와 어린 아기 같은 광인 등을 통해 철학적이며 심리학적인 테마들도 새겨 넣고 있다. 이 영화에서 놓칠 수 없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오스카는 주어진 배역에 없는 한 가지 일을 저지른다. 그것은 첫 번째 배역이었던 금융자본가를 권총으로 사살하는 일이다. 감독은 마치 독립투사들이 적의 우두머리를 응징할 때의 비장한 분위기를 이 장면에 그려 넣었다. <나쁜피>에서도 인간의 악행을 역이용해 떼돈을 벌어보려는 제약회사가 탈취의 대상이 됐다. 흔히 사랑 이야기로 알고 있는 <퐁테프의 연인들>에는 군대의 행군과 군용기들이 비행하는 장면이 삽입돼 있다. 눈이 멀어가는 여자주인공의 아버지는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대령이라는 그의 직업은 재차 언급된다.

글로벌 금융 자본가들은 한 가정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운명도 하루아침에 내리막길로 접어들게 만들 수 있는 세력들이다. 우리나라는 20년 전에, 아이슬란드와 같은 나라는 몇 년 전에 타격을 받고 가정과 공동체, 지역사회가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던 경험이 있다. 그리스보다 상황은 나쁘지 않지만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이 위기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과학기술의 이기들이 찬란하게 빛나는 이 시대에 많은 이들이 ‘헬’이라는 접두어를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홀리 모터스>에서 레오 카락스 감독은 문을 닫고 새단장을 기다리는 사마리텐 백화점을 중요한 배경으로 삼았다. 네프 다리로 연결되는 이 건물은 <퐁네프의 연인들>에서는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1869년에 개장한 이 백화점은 2005년에 폐쇄됐고, 일본 건축회사 SANAA가 리모델링 작업을 맡고 있다. 자본주의의 무대이자 상품의 거주지인 이 백화점은 영화의 배경인 수정자본주의 대도시 하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며, 팔다리가 잘린 마네킹들만 나뒹굴고 있는 폐허다. 이 폐허는 무덤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곳이다.

영화에서는 또 다른 실제적인 무덤들이 의미심장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파리의 공동묘지와 팡테옹이 그것이다. 루이 15세가 성당으로 지었던 팡테옹은 1791년에 국가적 위인들을 안치하는 장소로 변경됐다. 이 건물은 성당으로 계획되었기에 그리스 십자형의 평면으로 돼있고, 베드로 성당처럼 돔과 기둥열로 구성된 지붕이 중앙에 솟아 있다. 그리스 신전의 모습을 띠는 입구 모습은 로마의 판테온에서 비롯된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과 함께 잉태된 이 신고전주의 건물은 <홀리 모터스>에서 마지막 역할로 가는 오스카의 길에 등장한다.

18세기말 계몽주의 시대가 지향한 이성의 빛줄기를 따라 돈과 기술은 현대 문명이라는 무대에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해 영원한 주인공의 자리를 누리고 있다. 이 두 체계는 어느새 스스로 빛이 되었으며, 시간이 퇴적되면서 더 깊고 넓은 어둠을 잉태하고 있다. 그 빛과 어둠의 변주 속에서 현대의 인간들은 ‘홀리 모터’처럼 때로는 피로하고 때로는 앞일을 걱정한다. 천재 감독들은 빛의 야만성에 대해 고발하고 싶어 하지만, 돈과 기술을 먹지 않고는 작동되지 않는 영화산업의 케이지 속에서는 난해함의 무기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우영선 객원기자
ahrheit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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