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0일, 안산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추모 리본을 손으로 쓸며 분향소로 향하고 있다.(사진=남성운 기자)
2014년 5월 10일, 안산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추모 리본을 손으로 쓸며 분향소로 향하고 있다.(사진=남성운 기자)

지난 2월 28일 <사일런스>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각색하여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공을 들여 만든 작품으로 영화 애호가들이 기대하고 있던 작품이다. 17세기에 전투적으로 진행된 가톨릭 전도의 역사와 관련된 내용이기에, 작년 12월 말 교황은 감독을 직접 만나 노고를 치하하고 영화의 흥행을 위해 기도했다. 그러나 소설에서 묘사한 신의 침묵과 인간의 고뇌가 영화에서는 잘 표현되지 못했고 영화는 흥행에도 실패했다.

소설 <침묵>에는 충격적인 장면이 많다. 강제로 수장되는 신자들을 따라 가톨릭 신부가 바다에 뛰어들어 함께 죽음을 맞는 대목도 그렇다. 인간의 고통과 죽음을 삼킨 바다는 너무도 고요하고, 신은 평화의 수면 위에서 침묵에만 머문다는 통탄이다. 20세기 중반 이념 대립의 시기에, 어촌의 평범한 가장들은 사상범으로 몰려 바다에 그대로 수장됐다. 그때의 어린 아들은 세월과 함께 가장이 되어 그 죽음과 침묵의 바다를 일터로 삶을 묵묵히 일구어 갔다.

2014년 4월 16일, 한반도에서는 많은 아이들과 국민들이 수장됐다. 초기에 언론은 단순한 사고로 몰기에 바빴지만,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지금 분명해졌다. 3년이 흐른 지금, 꽃잎들은 봄바람을 타고 거리를 흩날리며 평범한 사람들은 미세먼지 속에서도 봄의 기운에 환호한다. 믿음 있다는 자들은 부활절을 맞아 들뜨고, 선거에 목숨 건 자들은 표를 위한 아부와 헐뜯기에 한창이다.

충분히 대피시켜 살릴 수 있었는데 왜 승객들을 버렸는가의 의문과 함께 미스터리한 부분 중 하나는 그 큰 배가 어떻게 그렇게 쉽게 침몰했는가이다. 기자는 제주와 여수, 제주와 목포를 오가는 골드스텔라호와 시스타크루즈호를 직접 타 보았다. 화물 기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목포와 제주를 오가는 배에서는 과적이 흔히 있는 일이라고 했다. 파고가 5미터라도, 세월호와 유사한 대형 여객선의 내부에서는 흔들림조차 잘 느껴지지 않는다.

사고 당일의 초기 뉴스에 따르면, 세월호에서 긴급 후송된 사람들은 화상 환자들이었다. 언론은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냈고, 계속해서 잘못 계산된 생존자 수를 내보냄으로써, 시청자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뉴스 앵커의 표정이 굳어지는 순간, 섬으로 구조된 아이들의 숫자가 중복 계산되었음을 알게 된 순간, 국민들은 비극을 알아차리게 됐다. 세월호는 가라앉았지만 그때조차도 아이들을 살릴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세월호가 바다에서 다시 부상하여 목포항으로 접안되던 날, 한때 대통령이었던 사람은 구속되었다. (3월 31일 3시 3분) 세월호가 가라앉는 날 대통령이었던 그 사람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러한 의문조차 제대로 해명되지 않은 채, 3년이 흘렀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한 광장의 그 많은 촛불 시민들의 분노가 겨냥하는 것은 비리와 탐욕에 놀아난 그녀의 무능과 동시에 세월호가 참변을 겪는 시간에 보인 무책임과 냉혈안의 모습이다.

지난 몇 달간 수백만 국민의 촛불이 광화문광장 일대를 밝히며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을 이끌어냈다. 2014년 8월 16일에는 수십만의 가톨릭 신자들이 교황을 알현하기 위해 이 광장에 몰려들었다. 교황은 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의 부모를 잠시 위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황을 먼발치에서라도 보기 위해 광장에 모여든 신자의 어마어마한 무리를 보면서 기자는 비통함을 느꼈다.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애통해하는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와 외쳐야 했다.

이러한 외침을 대신해 준 것이 노란리본이라고 할 수 있다. 저항과 동참을 상징하는 노란리본은 심연에 가라앉은 원통의 세월호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가끔 노란색을 볼 때마다 가면의 모습들도 오버랩된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아이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체형에 딱 맞게 깔끔하게 차려 입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고위 공무원들의 노란점퍼 때문이다. 노란점퍼는 결국 침몰한 배에서 아이들을 구조해내지 못했다.

노란리본에 외면했던 일부 정치가들은 3년이 지난 이 시점에는 철새의 행보처럼 혹은 사익을 위해 노란리본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노란리본을 무늬로 달고 다니는 정치적 지배세력과 국민의 안전을 의미하는 노란점퍼를 폼으로 입는 정부의 권력자들은 아직도 세월호 침몰의 진상 규명에 소극적이다. 잔혹하게 수장된 사람들의 가족이 겪는 처절한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이 이 중에 있다면 종교인이라는 타이틀이 부끄러울 수 있겠다.

3년이 지난 2017년 4월 16일 오늘, 봄의 대지와 바다는 정적과 고요로 침묵하겠지만 이 땅의 우리는 세월호의 그들을 더욱 선명하게 기억하면 좋겠다. 모종의 술수와 지배세력의 타락에 희생된 그들과 남겨진 가족들의 고통을 오늘 하루만이라도 나의 것으로 느끼고 아파했으면 좋겠다. 한반도에 다시 전운이 감돌아 두려운 오늘, 마치 이 나라가 침몰해가는 거대한 배처럼 느껴지는 오늘에 우리는 하루의 일상을 무사히 보낼 것이며, 지켜낼 것이다. 가족과 이웃을.

저작권자 © 구리남양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